獨 자이스 CEO 만나 협력 논의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 격화 승리 위해 2차 공급망까지 점검" ASML 신임 CEO도 동행
그동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만난 해외 기업인은 둘 중 하나였다. 삼성에 ‘일감’을 주는 고객사거나 삼성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거나. 작년 5월 만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전자라면, 연말 방문한 네덜란드 ASML의 피터 베닝크 CEO는 후자였다.
이랬던 이 회장이 삼성의 고객사도, 협력사도 아닌 독일 자이스 본사를 찾아 칼 람프레히트 CEO를 만났다. 자이스는 ASML의 첨단노광장비(EUV)에 3만 개가 넘는 부품을 넣는 ‘정밀광학업계 최고수’다. 삼성은 첨단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필수품인 ASML의 EUV를 경쟁사보다 먼저 받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자이스와 직접 거래하는 사업은 거의 없다.
이번 방문에 대해 “2차 협력업체까지 챙길 정도로 이 회장의 경영 보폭이 넓어진 것” “글로벌 반도체 패권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동안 들여다보지 않은 공급망까지 살펴보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28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6일 독일 오버코헨에 있는 자이스 본사에서 람프레히트 CEO와 만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중장기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송재혁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남석우 DS부문 제조&기술담당 사장 등 반도체 생산기술을 챙기는 경영진도 동행했다.
자이스는 EUV 관련 핵심 특허를 2000개 넘게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EUV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ASML은 광학 부품을 이 회사 제품만 쓰고 있다. “자이스가 없으면 EUV도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만남에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신임 CEO가 동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푸케 CEO는 10년간 ASML을 이끌었던 페터르 베닝크 CEO의 뒤를 이어 이달 초 수장 자리에 올랐다.
업계에선 이 회장이 삼성의 반도체 공급망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자이스를 방문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자이스에 문제가 생기면 EUV 생산 차질로 이어지는 만큼 반도체 핵심 장비의 글로벌 공급망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행보라는 얘기다.
이 회장의 자이스 방문이 ASML과의 관계를 보다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전쟁이 격화하면서 삼성뿐 아니라 TSMC, 인텔 모두 ASML에 “경쟁사보다 먼저 EUV를 달라”고 요청하고 있어서다. ASML이 ‘갑보다 센 을’이라면 자이스는 ‘을보다 센 병’이다. 자이스와의 긴밀한 파트너십 구축을 통해 사실상 ASML에 다시 한번 ‘러브콜’을 보냈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이날 자리에서도 ASML의 푸케 CEO에게 긴밀한 협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