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목재 교역촉진제도 다음달 확대시행 펄프 수입 때 벌채 합법성 여부 검증 중국산 종이제품에는 손 못써 '역차별'
다음달 계도기간을 끝내고 시행 예정인 ‘합법목재 교역촉진제도’가 국내 제지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제도는 산림청이 주도하는 정책으로, 불법 벌채된 목재가 국내에 반입되지 않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중국 등 해외에서 만든 종이 제품이 합법적인 목재를 사용했는지는 추적하지 않은 채 국내 제지사들만 옥죄고 있어서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산림청은 다음달 16일부터 수입 목재펄프 등을 대상으로 합법적으로 벌채가 된 제품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도입한다. 제지업계는 매년 전체 수급량의 80%에 해당하는 약 200만톤 이상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해외 펄프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제도에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간다. 제도가 실시되면 제지회사는 펄프를 수입힐 때마다 6단계에 걸친 산림청의 합법성 심사를 거친 뒤 해당 서류를 관세청에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이같은 정책이 중복 규제에 불합리한 요소까지 담겼다는 점이다. 수출을 하고 있는 제지 회사들은 이미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 인증을 받고 있다. 종이를 해외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FSC 인증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FSC 인증은 원시림 무단 벌목이나 유전자 변형 목재펄프가 아니라 조림펄프 제품에만 부여된다. 제지회사들은 펄프를 수입할 때 관세청에 FSC인증 코드를 기입한다. 그런데 국제 인증과는 별도로 산림청이 한 번 더 들여다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제지사들은 펄프를 연 단위로 계약해서 수입하고, FSC 인증 역시 1년마다 갱신하는 편인데 산림청 합법 목재 인증은 매달 혹은 매주 들어올 때마다 건건이 검사를 해야해 절차가 더 복잡해졌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합법성 검사 명분으로 기관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도 나온다.
위생용지 수입량 역대 최다... 다른 잣대 적용하는 정부
국내 산업 역차별 문제도 제기됐다. 제지회사에서는 해외에서 벌채한 나무로 만든 펄프를 수입해 물과 약품을 섞은 뒤 종이로 만든다. 국내 제지사는 산림청 규정을 지키기 위해 펄프를 수입할 때마다 합법 목재를 확인하는 각종 서류를 펄프제조사에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펄프 대신 종이 형태로 들어온 외국 회사 제품에 대해서는 합법 목재로 만들어졌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다. 가령 국내 위생용지 제조회사가 화장지 원지를 만들기 위해 펄프를 수입하려면 산림청이 요구하는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원지 제조사는 이 과정이 생략된다. 또 다른 제지업계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에서는 외국 제지사에서 만든 종이 제품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데 우리나라는 국내 기업만 규제하려든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는 “업계 우려를 충분히 공감해 절차 간소화, 외신 제품으로의 적용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제지업계에 규제를 들이미는 사이 국내 시장은 외국산 제품으로 잠식되고 있다. 특히 화장지를 포함한 위생용지 업계는 지난해 수입량이 역대 최다인 15만5000톤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41.7% 늘어는 숫자다. 그중에서도 중국산 수입량이 지난해 기준 전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3만2719톤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지산업을 위축시키는 규제를 시행하려면 정부가 피해 우려 등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학래 서울대 농림생물자원학부 명예교수 교수는 “수입되는 종이 제품에는 적용하지 않고, 국내 기업에만 기준을 적용하면 결과적으로 족쇄처럼 작용할 수 있어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