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현지시간)부터 이탈리아 밀라노 로 피에라에서 진행 중인 세계 최대 디자인 전시회 ‘밀라노 디자인위크’ 내 가전 가구 전시회 ‘유로쿠치나’에서 주목 받은 제품 중 하나는 바로 '똑똑한' 오븐이다. 이 오븐은 양파나 감자같은 식재료만 넣으면 사실상 요리가 끝난다. 내부에 탑재된 카메라가 이 재료로 무슨 요리를 하면 좋을지 최적의 레시피를 알려주고, 연동된 전용 애플리케이션이 조리 방식도 추천하고 설정한다. 요리가 다 될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다 되면 앱이 알람으로 알려준다.
이 오븐을 만든 기업은 유럽의 전통 가전 '강호'인 밀레, 보쉬가 아니다. 삼성전자, LG전자도 아니다. 주인공은 중국의 가전 기업 하이얼이다. 유럽 시장을 겨냥해 이번 전시회에서 ‘바이오닉쿡’ 오븐을 새롭게 선보인 것. 관람객들도 열광했다. 하이얼 부스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다. 과거 ‘가성비’로만 승부하던 중국 가전기업이 이제는 기술력에서도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약진한 모습이었다.
하이얼 부스 바로 옆에 있는 ‘캔디’는 하이얼의 또 다른 가전 브랜드다. 원래 이탈리아 가전 기업이었던 캔디는 2019년 하이얼이 인수하면서 주인이 바뀌었다. 하이얼이 인수합병(M&A)을 통해 현지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하이얼은 캔디 뿐 아니라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 뉴질랜드 피셔앤파이클도 사들였다.
이번 전시에서 캔디는 빌트인 가전 중심으로 선보였다. 제품 각각의 인공지능(AI)와 같은 기술력을 강조한 하이얼과 다르게 차별화 했다. 빌트인 가전이 중심인 유럽 시장을 특화해 ‘맞춤형’으로 꾸민 것이다.
빌트인 가전 시장은 프리미엄 시장으로 분류된다. 단일 제품을 판매하는 것보다 가격이 15% 이상 높아서다. 그 중 유럽은 지난해 기준 250억달러(약 33조원) 규모로, 세계 시장(600억달러)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 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기업간 기업(B2B) 사업이다보니 진입 장벽이 높다. 가구와 함께 인테리어, 규격 등을 맞춰야하다보니 오랜 기간 합을 맞춰온 밀레, 보쉬와 같은 현지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 가전 기업의 도약에 국내 기업은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한종희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부회장)은 "(중국 기업들이) 많이 따라오고 있고 가격 경쟁력도 있다"며 "유럽 빌트인 업체들도 고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류재철 LG전자 H&A사업본부장 사장도 가장 경계 대상 기업 1순위로 하이얼을 꼽으면서 "좋은 제품을 출시해 경쟁사보다 빠르게 내놓는 것이 과거에 우리가 했던 성공방정식인데 중국이 이 방식을 빠르게 구사하고 있다. 발전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