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네트웍스는 SK그룹 내에서도 안정적인 주력 사업체를 매각한 뒤 미래 신사업에 투입하는 방식의 사업 전환을 가장 활발하게 추진하는 계열사로 꼽힌다.
2016년부터 패션, 액화석유가스(LPG) 충전소, 석유 도매 유통, 철강 수출입, 주유소 사업 등 여러 사업부를 매각했다. 2020년엔 직영주유소 부지 등을 1조3000억원에 팔았다. 그렇게 마련한 실탄으로 국내외 인공지능(AI) 기업 등에 투자했다. 2019년 이후 기업 20여 곳에 총 2500억원의 실탄을 투입했다.
투자업계에선 SK네트웍스가 캐시카우인 렌터카 사업 매각을 단행한 점을 두고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번 거래로 현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렌터카 사업 특성상 떠안은 대규모 부채를 단숨에 줄였다. 이를 바탕으로 추가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알짜 계열사 매각한 SK네트웍스
SK렌터카는 SK네트웍스의 핵심 캐시카우로 꼽혀왔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1조4028억원, 영업이익은 1220억원을 거뒀다. 전년 대비 각각 12.5%, 28.3% 증가했다. 모회사인 SK네트웍스가 벌어들이는 연간 영업이익(2373억원)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며 매년 성장세를 보여온 알짜 자회사였다.
그런데도 SK네트웍스가 SK렌터카 매각을 발 빠르게 결정한 것은 AI로의 사업 모델 전환에 속도를 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SK네트웍스를 이끄는 최성환 사업총괄 사장은 지난 2월 SK네트웍스의 정체성을 ‘AI 전문기업’으로 내걸고 계열사인 SK매직, 데이터 관리업체 엔코아, 워커힐호텔 등에 AI를 접목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SK렌터카는 핵심 계열사임에도 협업에 관한 사업계획에서 빠져 있다 보니 투자업계에선 매각 가능성이 확산했다.
SK네트웍스는 SK렌터카 매각으로 확보한 현금을 가지고 국내외 AI 관련 기업들을 인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1월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의 고객사 특화 솔루션 개발 스타트업인 업스테이지에 투자했고, 지난해에는 데이터 관리·솔루션 기업 엔코아를 자회사로 인수하는 등 빠른 행보를 보였다.
이번 매각으로 SK네트웍스의 연결 기준 차입금이 대폭 줄어드는 효과도 거둘 전망이다. 렌터카 사업 특성상 자동차 등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선 회사채 발행과 금융기관 조달 등 외부 차입이 불가피하다. SK렌터카의 부채비율은 2021년 말 491.4%에서 지난해 573.6%로 상승했다. 한 해에 지급해야 할 이자 비용만 911억원에 달하다 보니 모회사인 SK네트웍스의 재무 부담으로까지 전이됐다.
○SK그룹 유동성 확보 ‘시동’ 해석도
일각에선 SK렌터카 매각이 SK그룹의 유동성 확보를 위한 첫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SK그룹은 과거 저금리 기간 이어진 M&A로 그룹 유동성 관리에 적신호가 켜지자 비주력 자산을 중심으로 여러 매물을 정리하는 절차를 밟아왔다. SK렌터카도 SK㈜ 차원에서 투자한 미국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투로, SK스퀘어가 보유한 T맵 등 여러 기업과 연계해 사업 고도화를 꾀했지만 별다른 시너지를 보지 못하자 비주력 자산으로 분류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인수로 새 주인에 오른 어피너티는 잠잠하던 국내 M&A시장에서 대형 빅딜로 3년여 만에 복귀를 알리게 됐다. ‘OB맥주’ 거래로 국내 사모펀드(PEF)업계에 신화를 쓴 어피너티는 2021년 GS리테일과 손잡고 요기요를 인수한 뒤 좀처럼 M&A시장에서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과거 인수한 락앤락이 부진에 빠졌고 버거킹 회수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SK렌터카 인수는 박영택 회장과 원년 멤버인 이철주 회장, 어피너티의 투자를 총괄한 이상훈 대표 등이 지난해 모두 회사를 떠난 후 리더십을 쥐게 된 민병철 대표의 첫 투자 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