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테슬라 세단이 서울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4일 국내 공식 출시한 새 모델3입니다. 코드명 ‘하이랜드’로 불리는 이 차량은 외관과 성능이 신차 수준으로 개선됐습니다.
출시 가격은 △후륜구동(RWD) 트림 5199만원 △사륜구동 롱레인지 트림 5999만원입니다. 12일 확정된 모델3 RWD의 국고보조금은 226만원. 지자체 보조금을 합칠 경우 실구매가는 4000만원 후반대로 떨어집니다.
테슬라가 오랜만에 내놓은 신차인 만큼 소비자들의 관심이 큽니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테슬라 SUV인 모델Y RWD가 5934대 팔리며 월간 수입차 1위를 달성했습니다. 새 모델3는 이 돌풍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테슬라코리아는 모델3 예약 물량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국내 언론 최초로 새 모델3 시승을 이틀간 진행했습니다(4월 6일자 「모델3 내러티브 시승기 1편 참조). 서울 역삼동 테슬라코리아 본사에서 강변북로를 따라 파주까지 총 250㎞를 달렸습니다. 이번 주는 테슬라 차량의 자율주행 기능을 집중 분석합니다. 기자는 강변북로와 자유로를 달리는 내내 오토파일럿을 켜고 모델3를 주행했습니다.
모델S급 ‘하드웨어 4.0’ 장착
새 모델3엔 테슬라의 자율주행 플랫폼 하드웨어 4.0(HW 4.0)이 장착됐습니다. 고급 차량인 모델S·X에 적용된 부품입니다. 자율주행 반도체 및 8대의 카메라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카메라와 인공지능(AI)에 의존하는 ‘완전 비전 중심 방식(Heavily Vision-based Approach)’입니다. 수억마일의 고객 주행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자율주행을 구현하려 합니다. 기존 모델에 있던 초음파센서는 모델S처럼 모두 빠졌습니다.
시승한 차량엔 904만원짜리 FSD(Full-Self Driving) 옵션이 적용됐습니다. V11.1 버전입니다. 사람이 차량의 운전을 책임지는 레벨2 수준의 자율주행 지원 소프트웨어입니다. 국내 FSD는 주행 보조 기능인 △내비게이트 온 오토파일럿(NOA)과 △자동차선 변경 △자동 주차 △차량호출 등의 기능을 쓸 수 있습니다. △교통신호등 감지 △시내 자율주행은 현재 북미 시장에서만 서비스됩니다.
정리하면 테슬라의 국내 자율주행 지원 기능은 고속화도로에서만 쓸 수 있습니다. ‘반쪽 FSD’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지요. 실제 가격도 북미의 절반 수준입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FSD와 기능상 차이가 없고 저렴한 ‘강화된 오토파일럿(EAP)’ 옵션(452만원)을 추천합니다. 다만 최근 테슬라는 기존 FSD 보유자가 테슬라 새 차를 사는 경우 이전을 허락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앞차의 삐딱한 차선 주행도 인식
강변북로에서 마포를 지나자 차량의 흐름이 서서히 풀립니다. 자율주행 기능을 시험할 때입니다. 주행 중 핸들 오른쪽에 달린 휠을 누르면 ‘띵’ 소리와 함께 디스플레이 화면의 도로에 파란색 선이 뜹니다. 오토파일럿이 활성화됐다는 신호입니다. 스크롤을 위아래로 조작하면 최고 속도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시속 80㎞로 맞추고 가속페달에서 살며시 발을 떼봅니다. 운전대엔 손만 슬쩍 걸쳐봅니다.
모델3는 스스로 주행을 시작합니다. 기자는 지난 수년간 테슬라에서 나온 신차를 시승하고 오토파일럿을 실험해봤습니다. 그때마다 느낀 건 오토파일럿의 운전이 꽤 신뢰할만하다는 점입니다. ‘왕초보 운전기사’보다 나은 구석도 있습니다. 막히는 길에선 속도를 줄이고 빈 도로에선 제한 속도만큼 올렸습니다. 이 과정이 제법 부드럽습니다. 곡선 코스를 달려도 쉽게 풀리지 않고 도로를 잘 따라갑니다.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에 탑재된 반자율주행 기술인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크루즈컨트롤(NSCC)’은 아직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디스플레이 화면을 보면 오토파일럿이 주변 차량과 장애물 사람 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앞차가 차선을 삐딱하게 주행하고 있는지도 확인됩니다. 큰 트럭과 작은 오토바이도 구별합니다. 공사 구간에선 장애물도 인지합니다. 물론 100% 완벽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오토파일럿이 실시간으로 주변 차량을 인지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면, 운전을 맡기는 데 안심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운전대 흔들어봐라” 잔소리는 불편
오토파일럿은 엄밀하게 말하면 첨단주행보조장치(ADAS)입니다. 운전자의 감독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오토파일럿이 운전자의 개입을 자꾸 요청한다는 점입니다. 주행 중 수시로 운전대를 흔들어보라고 하고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전방주시를 하라고 요청합니다. 규제 당국의 안전 지침 탓이겠지만 잔소리처럼 들리는 게 사실입니다.
핸들을 제대로 잡지 않는다는 경고도 누차 받았습니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오토파일럿이 강제 해제됩니다. 딱히 위험한 운전을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FSD나 EAP 옵션 구매자에겐 황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 모델3는 모델Y RWD처럼 중국산 차량입니다. 중국산 테슬라는 미국산보다 오토파일럿 구현 조건이 엄격합니다. 가령 미국산 모델X는 목적지로 가면서 알아서 척척 차선을 바꿉니다. 반면 중국산인 모델3는 운전사에게 변경 승인을 요청합니다. 차선 변경에 실패하면 재차 승인 요구를 합니다. 기존 미국산 차량은 실패해도 알아서 다시 시도했습니다. 똑똑했던 ‘테 기사’가 약간 바보가 된 느낌입니다.
테슬라코리아 관계자는 “미국산 테슬라는 한미 FTA 규정으로 미국 법규를 적용받지만, 중국산은 국내 법규를 적용받기 때문에 자율주행 기능에 차이가 있다”며 “중국산은 오토파일럿이 보수적으로 세팅됐다”고 밝혔습니다.
밤의 오토파일럿은 어떨까
구불구불한 파주 국도를 주행하다 서울 방향 자유로에 들어섰습니다. 도로엔 어느새 어둠이 깔립니다. 부슬부슬 빗방울도 내립니다. 사람에게도 썩 좋은 운전 환경이 아닙니다. 오토파일럿은 어떨까요. 버튼을 누르고 활성화하자 얼마 후 화면에 ‘악천후’란 표시와 함께 NOA가 꺼졌다 켜짐을 반복합니다. NOA가 꺼지면 목적지를 찾아가진 못하지만, 오토파일럿의 기본 기능으로 도로를 따라가는 데엔 문제가 없습니다.
차량이 줄어서 제법 속도가 나는데도 오토파일럿은 밤길을 거침없이 운전합니다. 자동 차선변경도 원활합니다. 핸들을 움직이라는 지시도 요령을 익히자 한결 편해졌습니다. 핸들을 오른손 아래쪽으로 잡고 손목을 살짝 비틀어주면 바로 인지하고 경고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오토파일럿에 신뢰성이 더 확보된다면 피곤한 밤길 운전이 한결 편해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승 이튿날 오전 8시경. 일산에서 강남 역삼동까지 강변북로 약 40㎞ 구간을 작정하고 오토파일럿에 운전을 맡겨봤습니다. 모델3는 정체된 출근길에도 알아서 척척 운전합니다. 느린 속도의 구간에서 훨씬 안정적이고 개입 경고도 적었습니다. 두 발이 자유로워지자 운전 피로도가 한결 줄어듭니다.
성산대교 북단 인근에서 1차선을 달리던 오토파일럿은 오른쪽 차선으로 옮기라고 권유(?)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이대로 1차선으로 계속 간다면 성산대교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오른쪽 깜빡이 버튼을 눌러도 모델3는 꽉 막힌 도로에서 차선 변경에 계속 실패합니다. 아직은 인간 운전자처럼 끼어들기는 무리인 모양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운전에 개입해 차선을 변경했습니다.
강변북로→한남대교 올라타기 성공
도로 가운데 차선에서 다시 오토파일럿을 켜고 주행합니다. 모델3는 다시 안정적으로 주행을 시작합니다. 마포와 여의도를 지나 차량 정체가 다소 풀리자 속도를 올립니다. 이후 한남대교 인근까지 어떠한 개입도 없이 스스로 주행을 해냈습니다.
이제 마지막 미션입니다. 과연 모델3는 강변북로를 벗어나 한남대교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고속화도로의 진출입은 NOA의 핵심 기능 중 하나입니다. 한남대교 근처에 다다르자 오토파일럿은 오른쪽으로 차선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무리 없이 맨 끝 쪽 차선으로 옮긴 모델3는 점차 한남대교 진입 램프로 다가갑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오른쪽으로 차선 변경해야 합니다.
“경로 수정을 위한 차선 변경 승인 대기 중”
디스플레이에 차선 변경 승인 요청 메시지가 떴습니다. 즉각 오른쪽 깜빡이 버튼을 누릅니다. 모델3는 유유하게 강변북로를 벗어나 한남대교를 향해 달려갑니다. 성공입니다. 고속화도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오토파일럿의 임무는 여기까지입니다. 이 정도면 막히는 출퇴근길에 꽤 괜찮은 운전 보조라 할 만합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테슬라가 국내에서 지원하는 자율주행 기능은 북미의 FSD V12에 비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북미 시장을 제외한 지역의 FSD가 아직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달 초 국내 테슬라 차주 1000명이 한자리에 모인 ‘테슬라 라이트쇼’ 행사에선 ‘FSD PLZ’란 문구가 떴습니다. 국내 팬들의 바람처럼 테슬라가 국내에서 조속히 제대로 된 FSD를 선보일 날을 기다려봅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끄는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X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