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기판’으로 불리는 유리기판 사업에 전자 부품업체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SKC가 주도해온 개발 경쟁에 미국 코닝, 일본 아사히글라스에 이어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참전을 선언해서다. 유리기판은 기존 실리콘 및 유기 소재 기판에 비해 열과 휘어짐에 강한 데다 더 많은 회로를 그려 넣을 수 있어 갈수록 세밀화되는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수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기, 내년 시제품 공개
12일 업계에 따르면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전날 서울대에서 ‘디지털 미래의 핵심 기술’이란 주제로 강연한 뒤 기자들과 만나 “내년에 유리기판 시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세종 사업장에 파일럿(시범) 생산 라인을 구축한 뒤 2026~2027년 양산에 들어갈 방침이다. 지난 1월 유리기판 사업 추진을 발표한 지 3개월 만에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다.
현재 유리기판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간 업체는 SKC다. 올 4분기부터 생산을 시작한다. 이 회사는 2021년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와 유리기판 합작사 앱솔릭스를 세우고, 미국 조지아주에 2억4000만달러(약 3247억원)를 투자해 작년 말 유리기판 공장을 세웠다. 코닝은 내년 애리조나주에 유리기판 공장을 완공한다.
LG이노텍도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 문혁수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을 겨냥해 유리기판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유리기판 왜 꿈의 기판인가
만들기 힘든 데다 제조단가가 높아 상용화되지 못하던 유리기판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인공지능(AI) 붐’ 때문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고성능 반도체가 필요한데, 더 세밀한 회로를 담는 데 유리기판이 제격이어서다. 유리기판은 실리콘, 유기 소재보다 표면이 매끄러워 더 많은 회로를 집적할 수 있다. 업계에선 유리기판이 구현할 수 있는 선폭은 5um(마이크로나노미터) 미만으로 유기기판(8~10um)보다 절반 수준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이 갈수록 심화하는 ‘초미세공정 경쟁’에서 이기려면 회로를 세밀하게 그릴 수 있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와 함께 유리기판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리기판은 여기에 전기신호 전달 성능과 전력 효율이 좋다는 강점도 갖췄다.
업계에선 이르면 2026년부터 유리기판이 반도체 제조에 쓰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등 주요 반도체 메이커는 부품업체들의 개발 속도에 맞춰 유리기판 적용 여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MD는 앱솔릭스를 포함한 여러 업체의 유리기판 샘플을 테스트하고 있다. 애플도 차세대 반도체 기판을 유리기판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리기판 자체 개발에 나선 인텔은 지난해 9월 유리기판을 적용한 반도체 시제품을 내놓는 등 잰걸음을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반도체 전쟁의 주도권은 가장 세밀한 칩을 만드는 업체에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며 “반도체 기판의 주력도 점차 유리기판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