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인과 결혼해 국내에 거주하는 결혼이민자의 부모 등 본국 가족에게 돌봄 노동 취업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라 ‘가사사용인’ 자격으로 취업하는 방식이다. 인력난과 고임금 등 ‘이중고’를 겪고 있는 국내 돌봄 서비스 시장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8일 “결혼이민자 부모 비자로 입국하는 외국인에게 가사사용인 취업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가사사용인은 가사도우미, 아이돌보미 등 개인 생활과 관련한 ‘가구 내 고용’ 형태로 최저임금과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현재 결혼이민자 본국 가족에게는 ‘자녀양육지원 방문동거비자’(F-1-5)를 발급한다. 외국인 등록과 함께 체류 기간을 최대 3년까지 연장할 수 있으나 취업은 허용하지 않는다.
4만명 결혼이민자 부모, 돌봄 인력난에 '단비'되나 정부 '최저임금 차등적용' 우회해…도우미 쓸 여력없는 가구에 도움
정부가 추진 중인 ‘결혼이민자 부모’ 대상 돌봄 취업 허용 방안은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생토론회 후속 조치 점검 회의’에서 “국내에 이미 거주 중인 16만3000명의 외국인 유학생과 3만9000명의 결혼이민자 가족들이 가사·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관계부처에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정부가 취업 허용을 추진 중인 결혼이민자 부모는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의 장인·장모, 시어머니·시아버지를 뜻한다. 현재 이들은 단기 체류 비자(F-1-5)를 통해 입국이 허용되며 자기 자녀인 결혼이민자가 임신했을 때부터 손주가 만 9세 되는 해까지 최대 3년간 한국에 머물 수 있다. 현재 이들은 가족의 양육 지원 외에 취업 목적으로는 입국이 불가능하지만 법무부는 이들의 돌봄노동 취업을 허용하고 ‘체류 기간’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지난해 기준 한국에 입국해 있는 결혼이민자 부모는 3만9000명에 달한다. 취업이 허용되면 이들 중 상당수가 국내 돌봄 서비스 시장에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 취업을 위해 입국하는 결혼이민자 부모가 늘면서 노동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국내 돌봄 시장에 ‘인력 공급 숨통’을 열어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19만 명이던 국내 돌봄 시장 노동 공급 부족 규모는 고령화 등으로 2032년 38만~71만 명, 2042년 61만~155만 명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결혼이민자 부모를 돌봄에 활용하는 방식은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시범사업으로 추진하는 ‘필리핀 가사 관리사’보다 나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필리핀 가사 관리사는 서비스 제공업체와 계약을 맺은 근로자로 분류돼 최저임금이 그대로 적용돼서다. 한 노동전문가는 “결혼이민자 부모는 이미 손주를 돌보기 위해 입국한 데다 한국 실정에도 익숙해 양질의 돌봄 노동을 제공할 수 있다”며 “자녀가 한국에 머무는 만큼 불법 체류를 선택할 가능성이 작고 자녀의 집에서 숙식 해결이 가능한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국내 인력 송출업계 관계자는 “결혼이민자 부모 도입은 가사관리사를 쓸 여력이 없는 가구에 선택지를 늘려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외국인 장모님’을 돌봄 인력으로 활용하는 우회 통로를 마련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노동 공급 상황이 여전해 외국인 가사도우미 임금이 최저임금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인력 송출업계 관계자는 “종국적으로는 돌봄 분야에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고 외국인 도입을 확대해 서비스 가격을 내리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