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자회사에 CEO가 팀장인 TF 본격 가동 1순위는 배터리·소재…내달 컨설팅 결과 나올 듯
SK그룹이 선제적인 사업 재편 작업에 들어갔다. 배터리 업황 둔화 등 여파로 그동안 추진해 온 여러 사업을 다 끌고 가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역량을 몰아주는 ‘선택과 집중’에 나선 것이다. 업계에서는 SK그룹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배터리셀 투자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비주력 사업을 정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8일 산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SK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 배터리셀(SK온), 동박(SK넥실리스), 분리막(SKIET) 등 SK가 벌이는 배터리 사업의 경쟁력 강화 및 구조 개편 방안을 의뢰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그룹의 정유·배터리·석유화학 사업을 이끄는 중간지주회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온, SK에너지, SK엔무브, SKIET 등 9개 자회사에 각사 최고경영자(CEO)를 팀장으로 하는 ‘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다.
TF는 각사의 재무 건전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분 매각, 투자 유치는 물론 사업구조 재편, 투자계획 재검토 작업 등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이 석유화학 불황으로 신음한 2015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사업 재편 검토에 들어간 것은 그만큼 투자 여력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 등 배터리 계열사에 자금을 대느라 2020년 말 23조원 수준이던 부채 규모가 작년 말 50조원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이로 인해 지난 19일 신용등급(S&P 기준)이 ‘BBB-’에서 투자 부적격 등급인 ‘BB+’로 떨어졌다. SK온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7조원 이상을 공장 건립 및 연구개발(R&D) 등에 쏟아부어야 하는데, SK이노베이션이 지원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금융감독원도 이런 상황을 감지하고 다섯 차례에 걸쳐 SK그룹의 재무 건전성 진단 작업을 벌였다. 회계상 잡히지 않는 부채의 전수조사도 진행 중이다.
SK는 배터리 외에 다른 비주력 사업 재편 작업도 하고 있다. SK렌터카와 동박 제조사 왓슨의 모회사인 론디안왓슨 2대주주 지분(30%)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3조원을 투입한 베트남 빈그룹 지분(6.1%)과 마산그룹 지분(9.5%) 등도 매각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SK '배터리 일병 구하기'…비주력 사업 정리하고 SK온에 집중 배터리 사업 전반 타당성 검토중…소재사업 등 구조개편 가능성
“전체 사업영역에 대한 체질 개선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겠다.”(박상규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사진)
“친환경 자산을 70%로 늘리는 ‘카본 투 그린’ 전략을 재점검하겠다.”(강동수 SK이노베이션 전략부문장)
28일 열린 SK이노베이션 주주총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중 하나는 ‘사업 재검토’였다. 두둑했던 주머니가 홀쭉해진 만큼 그동안 공격적으로 벌여온 수많은 사업들의 성공 가능성을 점검하겠다는 얘기다. 그렇게 ‘선택과 집중’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미래 핵심성장 동력인 배터리셀 등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사업 전반의 체질개선 ‘박차’
28일 업계에 따르면 SK는 그룹의 ‘살림’을 맡은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지시로 작년말부터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를 통해 배터리 분야 전반의 사업성을 진단하고 있다. 맥킨지는 배터리 셀을 제조하는 SK온에 힘을 싣는 대신 배터리 소재 사업에서 힘을 빼야한다는 내용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 중 SKIET가 배터리 4대 소재중 하나인 분리막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석유화학 기업 SKC의 자회사 SK넥실리스는 또다른 배터리 소재인 동박을 생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온은 공장설립 및 연구개발(R&D) 등에 지난해 7조원을 투입한데 이어 올해도 7조5000억원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배터리 소재 분야에도 수천억원씩 투자하는 건 그룹 차원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SK넥실리스와 SKIET는 지난해 각각 8000억원과 4940억원을 시설투자 등에 썼다.
SK는 이르면 다음달 건네받을 맥킨지 보고서와 SK이노베이션과 9개 자회사에 설치한 ‘경쟁력강화 태스크포스(TF)’의 제안 등을 토대로 사업 재편 방향을 수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일부 자회사 지분 매각과 희망퇴직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분 매각 대상 기업으로는 SKIET와 현금 흐름이 좋은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 SK인천석유화학, SK이노베이션과 중국 배터리 기업 EVE에너지의 합작법인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룹 수뇌부는 과감한 사업 재편을 주문하고 있지만, 사업전망이 좋은 회사가 많은 만큼 실제 계열사 매각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SK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예정됐던 투자를 보류한 것도 사업 재편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SKIET가 그랬다. 올 상반기로 계획했던 북미공장 신설 계획을 11월 이후로 늦췄기 때문이다. 투자전문 지주회사인 SK㈜는 올해 신규 투자를 한 건도 하지 않았다. SK그룹은 배터리 사업과 동시에 바이오, 반도체 등 주요 사업의 타당성 검토에도 나서고 있다. 또다른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통해 바이오 사업 진단작업을 벌이고 있다.
○당국, SK發 리스크 예의주시
SK이노베이션이 사업 재편에 나선 배경에는 악화된 재무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부채가 2020년 23조396억원에서 지난해 50조7592억원으로 3년새 두 배 넘게 불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거나 SK온이 금융권에 빌리는 차입금에 지급보증을 서주는 형태로 지원해주고 있다. 이로 인해 최근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인 ‘BB+’(S&P 기준)로 떨어지면서 회사채 금리가 오르는 등 이자부담도 커진 상태다.
그러자 금융 당국도 SK그룹의 재무 구조 점검에 나섰다. SK그룹의 ‘장부외 부채’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부외 부채는 SK그룹이 사모펀드(PEF) 및 주요 금융기관으로부터 상장을 조건으로 지분을 파는 프리IPO와 상환전환우선주(RCPS)·전환우선주(CPS) 등을 뜻한다. 장부외 부채는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잡혀 부채비율을 늘리지 않고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다. 하지만 SK그룹이 SK온에 투자한 기관에 투자금에다 이자까지 얹어서 되사겠다는 콜옵션 조항을 보장한 터라, SK그룹이 투자금을 되돌려주면 그동안 잡히지 않았던 ‘숨은 부채’가 대거 늘어날 것이란 게 금융당국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도 SK그룹의 전반적인 재무구조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사업구조 재편 작업이 마무리되고 올 하반기 배터리 업황이 살아나면 SK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