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KDB생명을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했다. 지난 10년 동안 진행한 매각 작업은 잠정 중단한다. 대신 KDB생명 대주주인 사모펀드(PEF)를 청산하고 지분을 직접 보유하기로 했다. 자금을 추가로 투입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책임 경영을 하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KDB생명의 기초 체력을 끌어올린 뒤 재매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펀드 청산하고 현물 분배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산은은 KDB생명 지분 95.66%를 보유한 사모펀드(PEF) KDB칸서스밸류사모투자전문회사를 청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 펀드는 2010년 산은이 칸서스자산운용과 함께 금호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호생명(현 KDB생명)을 인수할 때 조성했다.
칸서스자산운용도 큰 틀에서 산은과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펀드 출자자(LP)인 국민연금과 코리안리 등도 당장 KDB생명을 매각하더라도 제값을 받고 팔기 쉽지 않고, 조성 15년차를 맞은 펀드를 더 이상 연장하기 어려운 만큼 펀드 청산에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펀드를 청산하면 KDB생명의 지분은 펀드 지분율에 따라 산은이 지분 85.7%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된다. 국민연금 7.7%, 코리안리 1.8%, 칸서스자산운용 0.5% 등으로 지분을 나눠 갖는다. 이들은 추후 산은이 KDB생명을 매각할 때 산은과 동일한 조건으로 보유 지분을 같이 팔 수 있는 동반 매각 권한(태그얼롱)을 받을 예정이다.
○대규모 자본확충 예상
KDB생명은 산은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힌다. 산은은 2010년 금호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KDB생명을 인수한 뒤 2014년부터 매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해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나금융지주가 실사 후 인수를 포기했다. 올초엔 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에 매각을 추진했으나 이 역시도 무산됐다.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매각 작업에 실패하는 동안 KDB생명은 서서히 망가졌다.
산은은 KDB생명을 자회사로 편입한 뒤 우선 재무구조 개선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KDB생명의 지급여력비율(K-ICS)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34.05%다. 금융당국 권고치(150%)보다 낮다. K-ICS는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재무건전성 지표다. 새 회계제도인 IFRS17이 지난해 도입된 이후 생명보험업계에서 KDB생명만 유일하게 금융당국 권고치를 한 번도 넘지 못했다.
업계에선 KDB생명의 정상화를 위해 최대 1조원의 추가적인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나금융지주 역시 실사 끝에 조 단위 추가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자 인수 의사를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산은은 인수 자금을 포함해 지금까지 KDB생명에 약 1조2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지난해에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유상증자 방식으로 1000억원을 지원했다. 산은은 KDB생명을 자회사로 편입한 뒤 추가 증자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산은이 KDB생명을 자회사로 편입하면 자본 확충 등을 추진할 때보다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산은은 최소 1~2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책임 경영을 이어가 KDB생명의 기초체력을 끌어올린 뒤 매각 작업을 재개할 계획이다.
ABL생명과 MG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등 시장에 보험사 매물이 많이 쌓여 있는 데다 동양생명 등도 잠재 매물로 꼽히는 현재 상황에선 매각을 서둘러도 좋은 값을 받고 팔기 어렵다는 게 산은의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