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로부터 공격받은 국내 기업이 최근 5년 사이 10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에 경영권 방어 수단을 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한국경제인협회가 김수연 법무법인 광장 연구위원에게 의뢰해 만든 ‘주주행동주의 부상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국 기업 수는 77개로 2019년(8개) 대비 9.6배 늘었다. 이 기간 평균 5% 증가에 그친 주요 23개국 수치를 크게 넘어섰다.
주요 23개국 중 행동주의 펀드 공격이 늘어난 국가는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8개국에 그쳤다. 일본은 2019년 68개에서 지난해 103개로 1.5배 늘어났지만, 증가율은 한국보다 훨씬 낮았다.
행동주의 펀드는 소수 지분을 매입한 뒤 경영진에게 각종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주주총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특징이다. 김 연구위원은 “행동주의 대응에 익숙하지 않은 아시아 기업이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스와밍’(하나 이상의 행동주의 펀드가 타깃 기업을 동시에 공격하는 방식) 전략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업들이 행동주의에 대응하기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스와밍 사례는 2020년 7건에서 2022년 17건으로 증가했다.
보고서는 행동주의 펀드에 시달리던 일본 기업들이 회사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있는 현상에도 주목했다.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에 따르면 비상장으로 전환한 일본 기업은 2015년 47개에서 2022년 135개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주된 이유는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기업도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방어 수단이 없는 만큼 일본과 같이 상장폐지를 결정하거나 상장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연구위원은 “지배주주 견제와 감시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균형 있게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