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캐(본 캐릭터)로 최고 레벨에 오르면 재미가 없어 새로움을 찾기 위해 만든 것에서 유래된 '부캐(부 캐릭터)'는 온라인게임에서 유래되었지만 이제는 일상용어가 됐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월급 외에 수입을 창출하고 제2의 인생을 대비하거나 그 동안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는 부캐만들기가 열풍이라는 보도가 있고, 음식점에서도 주메뉴보다 사이드메뉴가 손님을 더 끄는 '부캐의 반란'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노동법의 영역에서 최근 본캐보다 부캐가 더 주목받고 있는 영역이 있는데 바로 사내도급과 근로자파견관계 관련 분쟁이다. 사내도급이 실질적으로는 파견법의 규율을 받는 근로자파견관계인지 여부인지에 관한 이슈이고, 통상임금과 더불어 노동법의 영역에서 가장 많은 집단소송이 제기되는 이슈이다.
그리고 근로자파견관계 분쟁에서 본캐는 단연 사내도급과의 구별기준이라고도 불리는 근로자파견관계 판단기준과 어떠한 사정이 해당 기준에 포섭되는지 여부이다. 파견법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의 고용유연화 요구를 수용하면서 제정되었고 이후 본래 입법취지와 다르게 사내도급을 규제하는 법률로 작동하게 됐다. 사내도급과 근로자파견을 구별하는 기준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2015. 2. 26. 대법원이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하면서 많은 분쟁을 거치면서 근로자파견과 사내도급을 구별하는 기준이 정립되었고, 이후의 분쟁에서 위와 같은 기준의 적용 선례가 축적되면서 본캐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가는 흐름이다. 반면에 그동안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였던 근로자파견분쟁의 주변 이슈들이 늘고 있고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첫째, 협력업체별, 원고별 입증의 대상과 정도이다. 근로자파견분쟁은 집단소송으로 그동안 협력업체나 원고별로 계쟁기간(사용사업주의 고용의무를 발생시키는 기간)에 대한 증거관계가 엄격하게 조사되지 않고 통으로 혹은 두루뭉술하게 판단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는데, 최근 법원은 ‘협력업체별’ 또는 ‘공정별’ 그리고 ‘원고별’로도 개별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과거 한 개의 판결 안에서 업체별 또는 공정별로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와 부정되는 경우가 구분되어 있는 판결은 찾기 어려웠으나, 최근에는 이런 판결이 부쩍 늘고 있다.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면 그 효과는 개별적인 근로계약관계의 형성이므로 개별적, 구체적 판단과 입증이 필요하다는 결론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최근 선고된 대법원판결은 과거 근로자파견으로 볼 수 있는 징표가 있었다고 하면서도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대상 근무기간(고용의무 발생의 요건이 되는 기간 또는 시점)에도 그와 같은 사정이 있었는지 알기 어렵다고 함으로써(대법원 2024. 3. 12. 선고 2019다28966 판결) 개별적, 구체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둘째,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된다고 가정할 경우, 고용의무이행 청구권의 소멸시효 문제이다. 파견법상 사용사업주의 고용의무는 2007년부터 도입되었고, 2017년 이전에 제기된 분쟁에서는 소멸시효가 쟁점이 되는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이제 세월이 흘러 소멸시효가 문제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고 어려운 쟁점들도 부각되고 있다.
관련해 고용의무이행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라는 하급심판결이 있으나 대법원에서 직접 판단한 사례는 없다. 직접고용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사업주인 회사는 상인이고, 근로자파견관계는 협력업체와의 계약체결행위, 즉 상행위에 기반하여 문제되었으므로 상사채권의 소멸시효 기간인 5년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고, 아직 정리된 이슈는 아니다.
한편, 소멸시효의 기산점도 문제이다. 고용의무이행 청구권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기산된다는 판결이 있는 반면, 협력업체 재직 중에는 고용의무이행 청구권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므로 협력업체에서 퇴직한 날부터 소멸시효가 기산된다는 판결도 있는데, 사견으로는 권리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논리에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향후 대법원에서 정리가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실효의 원칙 적용도 이슈이다. 너무 오랜 기간 권리행사를 하지 않은 경우 해당 권리가 실효되었다는 법리이다. 판례는 노동분쟁에 있어서는 법률관계가 신속히 정리될 필요가 있으므로 실효의 원칙이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근로자파견이 문제되는 사건에서도 매우 오랜 기간 권리행사를 하지 않다가 뒤늦게 근로지지위확인을 구하거나 임금차액을 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지 여부가 종종 문제된다. 현재까지 실효의 원칙이 적극적으로 인용된 선례는 찾기 어려운데, 실효의 원칙은 사안마다 개별적으로 판단이 다를 수 있는 것이므로, 이미 협력업체를 떠난 지 상당한 기간이 지나 원청의 사업장에 존재하지 않고, 해당 사업장에서 유사한 분쟁이 발생하였음에도 참여하고 있지 않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근로자가 되겠다고 나타나는 경우에는 충분히 실효의 원칙이 적용 가능할 것이다.
넷째,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될 경우 근로조건 이슈이다. 기간제 근로자로 채용을 하더라도 무방한지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으나, 대법원이 원칙적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이고, 사업장의 실태나 동종·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의 근로계약 형태에 비추어 예외적으로 기간제도 가능하다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그런데 실제 임금 등 근로조건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가 문제되고, 실제로 많은 분쟁이 있는데, 파견법은 동종·유사 근로자가 있는 경우 그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동종·유사 근로자가 없는 경우 기존 근로조건이 저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동종·유사가 없는 경우 기존에 직고용이 되더라도 협력업체에서 적용받던 근로조건을 그대로 적용해주면 된다.
그런데 최근 선고된 대법원판결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자치적인 근로조건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 법원은 개별적인 사안에서 ①근로의 내용과 가치 ②사용사업주의 근로조건 체계(고용형태나 직군에 따른 임금체계 등) ③파견법의 입법 목적 ④공평의 관념 ⑤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다른 파견근로자가 있다면 그 근로자에게 적용한 근로조건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합리적으로 정하였을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본래 자치적으로 형성했어야 하는 근로조건을 법원이 정함에 있어 한쪽 당사자가 의도하지 아니하는 근로조건을 불합리하게 강요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하여 그 한계를 설정하였다.
대법원이 의도하지 않은 근로조건을 강요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점과 파견법의 명문의 규정을 고려할 때, 법원이 근로조건을 보충설?정할 수 있는 요건은 대법원이 제시한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할 때 특정한 근로조건을 적용할 것을 의도하였을 것이라는 점이 확연히 인정이 되는 경우로 한정되고 단순히 이견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법원이 근로조건을 설정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