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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서 20년간 실험만 했다'…프랑스가 야심차게 벌인 일

2024/04/22


고준위 방폐장 글로벌 현장을 가다
(2) 프랑스

2004년부터 지하연구시설 운영
과학자·엔지니어 '안전 실증시험'
40㎞ 떨어진 곳선 설비 위험평가

공청·토론회 열어 필요성 공감대
지자체에 매년 440억원 지원도
완공되면 세계 세 번째 방폐장




지난 2일 찾은 프랑스 파리 동북부의 시골 마을 뷔르. 드문드문 들꽃이 피어있는 드넓은 평야에 저층 벽돌 건물을 간간이 볼 수 있다.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운영하는 연구동과 사무실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곳 지하 500m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처분시설(고준위 방폐장) 시제오를 구축할 계획이다. 방폐장 부지는 축구장 2000개 크기(약 15㎢)에 달한다.

현지에서 만난 다미앵 마우리 타리에 프랑스 방사성폐기물관리청(ANDRA)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프랑스 정부는 고준위 방폐장 구축에 앞서 2004년부터 20년 동안 이곳에 지하연구시설(URL)을 가동하며 안전성을 검증하고 있다”며 “방폐장의 안전성에 대해 주민들이 확신을 갖게 하려면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여론을 형성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지 결정 후에도 20년 안전성 검증
프랑스는 방폐장처럼 지역 주민들이 꺼리는 국가 기간시설을 건설할 때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찍부터 원전을 주요 발전원으로 활용한 프랑스는 1991년 방사성폐기물연구법을 제정해 방폐장 건설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2000년 뷔르 지역에 방폐장 안전성을 실증하는 지하연구시설을 구축한 후 2004년부터 가동했다. 대국민 공개토론 등을 거쳐 2010년 뷔르 지역이 방폐장 부지로 결정됐지만, 프랑스 정부는 그 이후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지하연구시설을 가동하면서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실증 데이터를 쌓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지하연구시설은 연구동 사무실 지하 약 500m에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굴착기로 지름 10m 크기의 원형 터널을 파들어가며 레이저 광선 등을 활용해 지반 뒤틀림 여부 등을 측정한다. 지진과 홍수 등 기상 이변이 발생하면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새나갈지 여부까지 따져본다. 프랑스 원자력안전청(ASN)이 주기적으로 현장을 찾아 실험 결과를 검증한다.

다미앵 담당자는 “과거 원전과 방폐장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뷔르까지 찾아와 폭력 시위도 종종 벌였다”며 “하지만 지하연구시설을 장기간 가동한 후 방폐장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는 거의 사라졌다”고 전했다.
○2027년 고준위 방폐장 착공
프랑스 정부는 지하연구시설 외에도 핵폐기물의 안전성을 입증할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지하연구시설에서 약 40㎞ 떨어진 곳에선 향후 사용될 방폐장 설비의 안전성 평가가 이뤄지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100년 후 폐연료봉을 다시 꺼낼 수 있는 자동화 시설도 구축하고 있다. 100년 뒤 더 개선된 핵폐기물 처리 방안이 나올 경우를 대비한 조치다.

프랑스 정부는 이런 검증 결과를 토대로 2027년 뷔르 지역에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핀란드 스웨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지어질 방폐장이다.

이런 정부 노력에도 프랑스에선 원전과 방폐장을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는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열어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해 왔다. 국민이 방폐장의 안전성을 체감할 수 있는 방문자센터를 열었고 시제오 프로젝트의 현황을 알리는 월간지도 발간한다.

주민을 위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프랑스 정부는 2000년 ‘방사성 폐기물 관리계획법’을 제정해 뷔르 주변의 뮈즈와 오토마르누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두 지방자치단체엔 각각 연간 3000만유로(약 440억원)가 지원되고 있다.

오토마르누에서 만난 주민 파트리스 토레스는 “안드라는 지난 20년 동안 이곳에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마을의 1000여 개 일자리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뷔르=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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