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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김선달' 지자체…제주 바람값·전남 햇빛연금 징수

2024/04/14


재생에너지 발목 잡는 '황당 이익공유제'

강원, 특별법 3차 개정안 요구
육·해상 바람 '공공기금화' 추진
전남 신안, 지자체 조례 앞세워
태양광 사업자 이익의 30% 강제

"바람·햇빛 공권력 통제 위헌 소지"



한화자산운용이 투자한 제주 탐라해상풍력발전은 2022년 당기순이익 77억원을 내 이 중 약 13억원을 지난해 제주도에 지급한 것으로 추산된다. ‘풍력자원의 공공적 관리’를 명시한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과 2017년 제정된 ‘풍력자원 공유화 기금 조례’ 때문이다. 이 조례는 제주 풍력발전 사업에서 나온 순이익의 17.5%를 공유화 기금에 내도록 강제하고 있다.

14일 관련 정부 부처 등에 따르면 강원도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제주도처럼 강원특별법에 ‘육상·해상 풍력자원을 공공기금화한다’는 내용을 담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산업부는 재생에너지 확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반대하지만 강원도는 22대 국회에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라북도 역시 지난해 말 ‘신재생에너지 자원을 공공의 자원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은 전북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올해부터 이익공유제를 시행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 이익 공유를 강제하는 사례가 확산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을 공공사업화해 주민 수용성을 높인다는 명분이지만 ‘봉이 김선달’식 발상에 기초한 기업 재산권 침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익공유제 우후죽순 확산
광역지자체뿐만 아니다. 신재생발전사업이 밀집한 전남 신안군은 이미 지자체 단위에서 조례를 제정해 태양광사업자 이익의 30%가량을 ‘햇빛연금’으로 징수 중이다. 감사원이 “법률이 위임하지 않은 근거 없는 조례로 민간기업 이익을 침해한다”고 지적하며 개정·폐지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유야무야 마무리됐다. 지난해 말 누적 100억원을 햇빛연금으로 거둔 신안군은 풍력발전으로 이익 공유 범위 확대를 추진 중이다. 이대로면 SK E&S, 코펜하겐인프라스트럭처파트너스(CIP) 등 신안에서 풍력사업을 추진 중인 국내외 기업들도 이익 공유 대상이 된다.

충남 태안군 등 재생에너지 사업이 많은 기초 지자체에서도 법적 근거는 없지만 “신안군에서 하고 있는 제도를 우리는 왜 못하느냐”는 지역 여론이 늘고 있다. 이번 4·10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신안군 제도를 본떠 지역 주민에게 햇빛·바람·바이오 연금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추가해 이익공유제 확산 속도가 한층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규모 투자 제약 우려
하지만 국내 주력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이 기존 태양광·육상풍력에서 해상풍력으로 대형화하는 상황이어서 이익공유제를 둘러싼 갈등은 한층 커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 기준 발전사업허가를 받고 건설 중인 20㎿ 이상 신재생에너지 사업 2만2545㎿ 중 해상풍력은 1만6660㎿(73.9%)에 달한다. 태양광은 1358㎿(6.0%), 육상풍력은 4527㎿(20.1%)다. 해상풍력만 1.4GW 원전 12기에 달하는 규모다. 발전 규모가 커질수록 투자액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한다. 큰 리스크를 감수하며 투자한 기업들의 이익공유제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벌써 해상풍력 인허가를 둘러싼 지자체 간 다툼도 생겨나고 있다. 투자 규모가 18조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추자도 해상풍력사업이 대표적이다. 추자도는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에 속하지만 물리적으로는 전라남도에 더 가깝다. 제주도는 이미 전력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추자도 사업에서 나오는 전력은 전남 쪽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제주도는 전력계통의 부담 없이 향후 대규모 이익 공유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추자도 사업은 노르웨이 국영 에너지기업인 에퀴노르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향후 이익 공유를 둘러싼 통상 마찰까지 우려된다.

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는 결국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익공유제 때문에 기업들의 신재생에너지 사업 투자가 위축되면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격이 뛰고 REC를 의무 구매해야 하는 발전사업자 비용이 늘어나서다. 이 비용은 한국전력에서 국민이 내는 전기요금 내 기후환경요금으로 징수해 보전해준다.

헌법학회장을 지낸 김형성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제3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바람과 햇빛을 공권력이 통제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크다”며 “기업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신/황정환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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