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활용 두고 엇갈린 반응
구직자 '반색'·업계 '난색'
"챗GPT 금지할 경우 미리 공표해야""챗 GPT 쓰는 것도 능력 아닌가요?"최근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채용 경쟁률이 높은 한 공기업이 챗 GPT를 활용한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를 검출하겠다고 밝혀 이목이 쏠렸다.
지난 4일 한국수력원자력은 채용 과정에서 한 AI 기업의 'GPT 킬러'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업은 표절 검사 프로그램인 '카피킬러'를 서비스하는 기업이다. 채용 전형에서 챗 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축적된 문서 데이터 등을 활용해 챗 GPT로 작성된 자소서를 판독해주는 서비스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접한 누리꾼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누리꾼들은 "세상이 변했는데 컴퓨터, 계산기 사용하지 말고 일하라는 것과 같은 소리 아니냐", "글 쓰는 시간 절약하겠다는 게 뭐가 나쁘냐", "자소서 대필은 잡을 수 있냐", "애당초 자소서를 요구하는게 문제다", "그럼 AI 인적성 면접도 하지 말아라", "AI 활용법 공부하라고 강조하더니" 등의 의견을 내놨다.
반면 자소서 작성에 있어 챗 GPT 활용을 반대하는 누리꾼들은 "문장력도 지원자의 능력이니 GPT 활용 자소서는 걸러내야 한다", "외부 도구에 기대어 뭐든 손쉽게 해결하려는 것이 도덕적으로 문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생성형 AI 서비스를 채용 과정에 활용하는 것을 두고 구직자와 기업 간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을 방불케 한다.
지난달 24일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매출액 기준 상위 500대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4.1%가 챗 GPT로 작성한 자소서에 대해 '독창성이 없어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이어 챗 GPT로 자소서를 작성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65.4%가 감점과 불합격 등의 불이익을 주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인사담당자의 부정적 인식과 달리 지원자들은 챗 GP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7월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20대 취준생 14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4명이 취업 준비 중 챗 GPT를 활용했으며, 그중 54%가 자소서 작성에 생성형 AI를 썼다고 답했다.
이에 채용 플랫폼도 되려 AI 도구 활용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첨삭용으로 AI를 활용하면 취업 준비 과정에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람인에선 자소서 작성 후 'Ai 업그레이드' 팝업창을 통해 즉시 AI를 통한 수정이 가능하다. 사람인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통합 AI 자소서 서비스 론칭 후 3개월 만에 AI 기술 활용 자소서가 누적 6만 건을 돌파했고, 현재까지 사람인에 등록되는 일평균 자소서 건수도 출시 이전 대비 하루 평균 3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자소서를 쓰며 챗 GPT를 사용했었다는 20대 직장인 최모 씨도 "AI 도구의 자소서 결과물을 아예 베낀다는 의미가 아니"라며 "초안을 첨삭해달라고 하거나, 기업 정보를 확인하거나, 글의 가독성을 높이는 데 사용했다"고 전했다. 이어 "난 이과생이라 문과생보다 문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자소서 작성을 시작하는 것조차 힘들었다"면서 "이 부분을 생성형 AI가 많이 해소해줬다"며 챗 GPT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기업은 최 씨와 같은 챗 GPT 활용 사례보다 아예 가상의 경험을 지어내거나, 자소서를 대필하는 수준의 활용도를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챗 GPT에선 "학부 시절 들었던 ○○과목을 바탕으로 지원동기를 써줘" →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만들어줘" 등 아주 세밀한 명령까지 가능한 상황이다.
구직자와 기업 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이러다 채용 과정에서 아예 자소서 전형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3월 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기업 채용동향조사'에 따르면,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41.0%가 '자소서가 사라지고 다른 전형이 강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챗 GPT를 활용해 자소서를 작성하는 지원자가 늘고 있어 자소서를 객관적인 지원자 판단 자료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AI를 이용한 자소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회사 입장에서 취준생들에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새로운 도구인 만큼 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건 사실상 어렵다"며 "지원자를 한 곳에 모아두고 연필로 자소서를 쓰게 하지 않는 이상 완벽한 형평성을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기업 측이 자소서 작성에 있어서 챗 GPT의 활용을 금지할 거라면, 자소서를 검출할지 여부에 대해 명확하게 공표해야 한다. 가이드라인을 확인하고 지원자가 대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채용 시장에 대해선 "면접 전형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며 "챗 GPT를 활용해 자소서를 쓰는 지원자가 많은 만큼 자소서의 진위 판별에 관한 질문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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