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
모터·인버터·감속기로 이뤄진
'파워일렉트릭 시스템' 평가하고 개선
각국 법규 고려한 성능 인증 시험도
실제 주행환경 재현해 성능 최적화현대자동차그룹이 세계 시장을 겨냥한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과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 N 등을 속속 내놓고 있다. 대형 및 고성능 전기차가 새로운 미래 시장으로 떠오른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현대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는 이런 고성능 전기차의 산실이다. 이곳에 있는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에선 특히 전기차 동력계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와 모터, 인버터 등을 중점적으로 개발, 평가하고 있다. 특히 고전압 배터리와 파워일렉트릭(PE) 시스템의 고도화 등 전기차 성능을 판가름하는 요소에 연구 역량이 집중되고 있다.
○고성능 전기차의 산실
현대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은 모터, 인버터, 감속기로 이뤄진 PE 시스템의 품질을 높이고 성능을 강화하는 연구를 주로 한다. PE 시스템은 내연기관차의 엔진과 변속기 역할을 하는 전기차의 핵심 동력 부품 모듈이다.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은 각 시험실에 쓰이는 동력계 장비(축) 개수에 따라 1축과 2축, 4축 시험실로 나뉜다. 각 시험실은 다른 구조의 시험체를 동력계 시험 장비에 장착해 성능을 측정하고 있다. 시험체는 동력계 장비가 많아질수록 자동차에 가까운 형태를 띤다.
우선 1축 시험실은 전기차의 PE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전기 모터 성능을 테스트한다. 시험체는 모터와 인버터를 하나로 묶은 ‘모터-인버터’ 시스템이다. 모터-인버터를 단품으로 시험해 기본 동력원의 효율과 성능을 연구한다. 연구소 관계자는 “구동축이나 감속기처럼 동력 손실이 이뤄지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순수한 PE의 성능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1축 시험실 내부엔 일정한 테스트 환경을 구성하기 위해 다양한 장비가 있다. 이를테면 배터리 시뮬레이터는 실제 전기차의 배터리 잔량(SOC) 상태를 모사했다. 충·방전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전압 상황을 구현했다. 또 냉각수 쿨러와 오일펌프는 모터와 인버터의 시험 온도를 유지했다. 실시간 분석계도 마련돼 있다. 시험 중인 모터와 인버터의 전류와 전력을 한눈에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곳에선 글로벌 시장의 특성과 법규를 고려한 전기 모터 성능 인증 시험 등도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전동화 장치 출력 등의 측면에서 국가별로 서로 다른 기준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 해외 시장용 제품을 개발할 때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4축 시험실, 실제 주행환경 재현”
2축 동력계 시험은 모터-인버터 시스템에 감속기와 구동축을 결합해 이뤄진다. 이는 전기차의 구동계와 동일한 구조다. 모터에서 발생한 동력이 감속기를 거쳐 구동축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재현한다. 이 과정에서 PE 시스템의 전체적인 효율을 시험한다. 2축 동력계 시험에서는 감속기의 특성을 주로 파악한다. 감속기는 모터의 회전수를 낮춰 전기차가 더 큰 회전력(토크)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
2축 동력계 시험에서는 전기차의 전자식 오일펌프(EOP)를 장착해 실제 주행 환경과 비슷한 환경을 구현했다. 이로써 고온에 의한 영향도와 냉각 성능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전기차 성능 최적화를 위한 EOP의 제어와 매핑 작업도 2축 동력계 시험에서 함께 이뤄지고 있다.
4축 시험실에선 양산차와 동일한 사양의 차량을 확보한 뒤 차량 휠 허브에 동력계 장비를 직접 체결해 시험한다. 4축 시험실에서 사용하는 차량은 소비자가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차량과 거의 동일하다. 1·2축 시험실보다 전기차 성능을 가장 정확하게 테스트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이 연구소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전력 공급을 위해 배터리 시뮬레이터를 사용한 1·2축 시험실과 달리 4축 시험실에서는 전기차에 장착되는 배터리를 활용한다. 4축 시험실 연구원들은 여러 주행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배터리부터 휠까지 이어지는 에너지의 흐름을 관측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동력 손실을 분석해 평가한다. 또 실제 차량에 장착된 PE 시스템의 성능 최적화를 위한 냉각 특성 등도 연구한다.
경쟁사 차량을 가져와 분해 시험하면서 PE 시스템 개발 방향을 분석하기도 한다. 연구소 관계자는 “시험실 내에 주행 속도와 연동해 작동하는 대용량 송풍기까지 설치해 주행풍까지 완벽하게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로봇으로 인간 동작 흉내
4축 시험은 운전석에 있는 자동운전 로봇(사진)으로 이뤄진다. 운전자의 역할을 대체하는 이 로봇은 가속과 제동을 위해 페달을 밟는 동작을 반복한다. 사전에 설정한 가상 운전자 성향을 기준으로 연구원이 시험실 외부에서 로봇을 제어한다. 신호를 전달받은 로봇은 피스톤 압력을 변화시켜 직접 페달을 밟는다. 로봇을 움직여 가속·제동 페달을 물리적으로 밟게 하는 것은 실제 운전자의 움직임을 재현하기 위해서다. 또 로봇은 사람이 수행하기 어려운 균일한 수준의 힘으로 반복적인 시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4축 시험실에서 사용 중인 동력계는 최대 8000Nm(뉴턴미터)에 달하는 모터의 회전력(토크)을 측정할 수 있다. 또한 분당회전수(RPM) 역시 최대 8000RPM까지 측정이 가능하다. 현존하는 모든 전기차용 모터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이 연구소 측 설명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전기차의 고성능화에 발맞춰 앞으로도 장비 사양을 꾸준히 향상할 계획”이라며 “특히 모터 단품 시험을 시행하는 1축 동력계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사양을 갖춰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 연구원들은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에서 얻은 다양한 데이터를 전기차 설계 및 개발 관련 부서와 공유하며 협업한다. 예를 들어 설계 측면에서 의도하고 있는 사양의 성능과 효율이 제대로 구현되는지 검증하고, 만약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있다면 시험 데이터를 분석해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은 현대차그룹의 고성능 전기차 탄생에 기여한 곳이다. 일상 주행에 최적화된 전기차와 달리 고성능 전기차는 트랙을 비롯한 가혹 조건에서의 주행을 고려해 제작된다. 이에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에선 아이오닉 5 N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 시속 260㎞의 고속 시험과 같은 극한의 조건을 구현한다. 최대 시속으로 주행을 계속할 경우 발생하는 열을 어떻게 관리할지 등을 일선 부서와 공유하며 품질 개선 작업을 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부품 수가 적고 구조가 단순하다. 이는 바꿔 말해 전기 모터와 같은 핵심 부품의 아주 미세한 차이가 전체적인 상품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연구소 관계자는 “매일같이 수많은 시험을 반복하며 핵심 구동계의 성능을 끌어올리고 차량 개발 일정을 단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원 기자/도움말=현대자동차 남양기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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