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 주호민(42)씨 부부가 아들을 가르치던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서 불법 녹음물이 증거로 인정된 후 교육 현장에서 불법 녹음이 횡행하고 있다는 특수교사들의 호소가 나왔다.
전국특수교사노조는 3월 신학기를 맞아 각급 학교 특수학급과 특수학교에서 적발된 불법 녹음 사례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주호민 아들 판결 이후 "이를 계기로 불법 녹음이 많아졌다"며 "불법 녹음에 정당성이 부여됐다"고 부연했다.
충청권 모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특수교사 A씨는 지난 12일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 옷소매 안감에 바느질로 부착된 녹음기를 발견했다. 손바닥 4분의 1 크기의 녹음기에 대해, 학부모는 "학교생활이 궁금해 녹음기를 넣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A씨는 교권위원회에 이를 알리고 법적 대응에 나섰다.
수도권의 한 특수학교 교사 B씨도 지난 23일 학생의 가방에서 녹음기를 발견했다. 녹음기에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수업 내용이 모두 담겨 있었고, 제3자의 녹음 행위는 불법임을 알고 있었지만, 주호민 부부와 특수교사 간 법정 공방을 보면서 학교에 신고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휴대전화, 스마트 워치 등을 이용해 학부모가 실시간으로 대화 내용을 듣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 등 특수교육 현장에서 불법 녹음이 횡행하고 있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특수교사는 사비로 녹음방지기를 구입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불법 녹음 확산에 주호민 아들 사건과 관련한 판결이 영향을 끼쳤다는 입장이다. "한 웹툰 작가의 아동학대 고소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불법 녹음 내용을 증거로 인정한 뒤, 이 같은 불법 녹음이 더 많아졌다"는 것.
특히 노조는 "이런 불법 녹음이 아동학대 정황이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닌, 학부모들은 본인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지적하며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발견할 때까지 녹음을 반복한 뒤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짜깁기해 민원을 넣거나, 심지어 아동학대 신고 자료로 쓴다"고 꼬집었다.
또한 "특수교사들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수업과 생활지도가 점점 더 두려워진다고 호소하는 형편"이라며 "특수교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적극적인 생활지도와 행동 중재는 아동학대 신고를 불러온다'는 자조 섞인 글들이 올라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특수교사는 단순히 특수교육 제공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 학생과 함께 차별 및 편견에 맞서는 사람들"이라며 "몰래 녹음이라는 불신 가득한 현장이 아니라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교육 현장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서 교육부와 교육청을 향해 특수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특수교육 시스템을 마련해 줄 것을 호소했다.
주호민 부부는 초등학생 아들을 담당하던 특수교사 C씨가 수업 시간에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발언을 했다고 고소했다. 이와 함께 주호민 부부가 아들 가방에 몰래 들려 보낸 녹음기로 녹취된 내용을 증거로 제출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문제가 된 녹취록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것이라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한다면서도 이 사건의 예외성을 고려해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아울러 C씨의 정서 학대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C씨는 "대법원 판례와 다르게 예외적으로 불법 녹음이 인정된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며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검찰 역시 항소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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