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빼고' 반도체 키운다는 정부
세액공제 등 간접 지원만
美·日은 수십조원씩 뿌려정부가 반도체 클러스터 기반시설을 조성할 때 국비 지원 비율을 높이는 등의 내용을 담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종합지원 방안’을 27일 내놨다. 그러나 최근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는 보조금 지급 방안은 빠졌다. 미국 일본 등 경쟁국이 자국 내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수십조원 단위 보조금을 쥐여주는 ‘전시 상황’에서 한국만 소규모 간접지원(세액공제 최대 25%)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제5차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열고 △특화단지 기반시설 기업 부담분에 대한 국비 지원 최저비율 상향(5%→15%) 및 국비 지원 건수 제한(2건) 폐지 △용인 반도체 산단 공공기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등의 지원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은 최근 경쟁국의 보조금 직접 살포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일본은 구마모토현에 유치한 대만 TSMC 2개 공장 건설에 1조2000억엔(약 10조7000억원)의 지원금을 준다.
미국은 TSMC에 50억달러, 삼성전자에 60억달러, 인텔에 100억달러 등 총 527억달러(약 71조원)의 보조금을 뿌릴 계획이다.
초기 투자에 현금 지원 없고…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등
간접적 지원책에만 머물러…"이러다 칩 전쟁서 패배한다"
경쟁국들이 수십조원 단위의 현금을 지원하며 반도체 공장 유치에 사활을 거는 것은 국가 경제뿐 아니라 안보에서도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반도체산업이 자국 군사력과 첨단산업 기술을 좌우한다고 판단하자 2022년 자국 내 반도체 설비 투자에 527억달러(약 71조원) 규모 보조금을 지원하는 반도체 지원법을 통과시켰다. 한국과 대만 등에 지으려고 한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건설하라는 취지다.
일본 정부도 과거 반도체산업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가 구마모토현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 건설에만 1조2000억엔(약 10조7000억원)을 지원한다. 일본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TSMC 1공장은 착공 1년7개월 만인 지난해 말 조기 완공됐다. 통상 3년 정도 걸리는 기간을 절반 가까이 단축했다.
이런 경쟁국과 비교하면 한국 정부의 반도체산업 지원은 뒤처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정부는 대기업이 반도체를 포함한 국가전략산업에 설비투자할 때 15%의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올해까지는 한시적으로 10%의 추가 공제가 있어 설비투자 세액공제 혜택이 25%까지 늘어나지만 이런 추가공제는 올해 일몰된다.
세액공제는 공장이 가동된 후 이익이 발생하면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설비투자 시점에 현금으로 받는 보조금과 달리 반도체 경기가 나빠져 이익이 줄면 세금 혜택을 제대로 받기 어렵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반도체 기업들이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는 국가를 선호하는 이유다.
반도체업계는 추가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 등 국내 반도체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지난달 26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한 간담회에서도 투자 보조금 신설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가 이날 발표한 지원 대책에선 공장 건설 기초 단계인 기반시설 조성 지원 대책이 주로 담겼다. 반도체 클러스터 기반시설은 공공기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주고 기업의 기반시설 조성 부담금을 국비로 일부 줄여주겠다는 내용 등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경쟁국의 투자 보조금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며 “지원 외 투자 인센티브 제도 확충 방안도 지속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산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단기간 세액공제를 대폭 확대했다는 이유로 보조금 정책에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투자 보조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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