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리포트
銅맥경화…中 수집상, 고물상 돌며 구리 스크랩 '싹쓸이'
銅 제조업체 줄폐업 '비상'
구리 물량부족에 공장 못돌려
올들어 김포서만 3곳 문닫아
中, 무자료 현금거래 허점 이용
지난해에만 유통물량 15% 빼가
업계 대책요구에 정부 '모르쇠'충북 음성에서 구리 잉곳(덩어리)을 제조하는 P금속은 지난해 12월부터 월 생산량이 평소의 10분의 1인 100t으로 급감했다. 주원료인 구리 스크랩(부스러기) 수급에 차질을 빚어서다. 회사 관계자는 “중국이 스크랩을 싹쓸이하고 있어 물건을 만들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전선과 파이프, 건축자재, 전자제품 등의 필수 소재로 쓰이는 구리 합금의 주원료 구리 스크랩이 중국에 무더기로 팔려나가며 국내 산업계가 극심한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진공청소기처럼 구리 빨아들여”
21일 관세청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에 수출한 구리 스크랩은 2만4976t(추정치)으로 전체 수출량(3만4238t)의 73%를 차지한다. 작년 1분기(1만3141t)와 비교하면 약 두 배 증가했다. 지난 한 해 중국으로 수출한 물량은 6만7043t으로 2020년(1만6340t)의 네 배가 넘는다. 1차 정제를 위해 태국, 말레이시아 등을 거쳐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는 물량을 합치면 총 10만t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세계 구리 소비의 약 55%를 차지하는 중국은 스크랩 사용 비중을 계속 늘리는 추세다. 광석 제련을 통해 얻는 구리보다 스크랩을 재활용하면 탄소 배출량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가공 비용이 덜 드는 한국산 구리 스크랩을 끌어모으는 이유다.
구리 스크랩은 동네 소규모 고물상(소상)에서 규모가 큰 중상, 대상을 거쳐 구리 제조업체에 공급된다.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물량이 늘면서 스크랩 유통업체부터 물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 김포에선 구리소재 제조업체 세 곳이 최근 문을 닫았다.
○국내 깊숙이 침투한 中 수집상
구리 유통·제조업체들은 중국의 싹쓸이 현상이 발생하는 주된 이유로 제도상 허점을 꼽는다. 초기 스크랩 매입 단계에 벌어지는 ‘무자료 거래’를 정상적인 거래로 입증할 방법이 없어서다. 한국동스크랩유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고령자가 리어카를 끌며 수거하는 물량, 소규모 건물 철거 과정에서 나오는 스크랩을 동네 고물상에 팔면서 일일이 세금계산서를 발급해줄 수 없다”며 “매입 근거 없이 스크랩을 팔면 모두 수입으로 잡혀 30%가 넘는 소득세를 물어야 하는데 중국 수집상이 이 틈을 노리고 시세보다 더 좋은 값에 현금을 주고 구리 스크랩을 사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비철금속협회에 따르면 국내에 유통되는 구리 스크랩 물량은 연간 65만t 규모다. 이 중 약 30%는 세금계산서가 붙지 않는 무자료 물량으로 추산된다. 국세청이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수시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이는 게 중국으로의 수출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중상업체 대표는 “국세청의 무리한 조사 때문에 차라리 흔적이 남지 않는 중국 업체에 물건을 넘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부가세 탈세 등 국부 유출 심각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무자료 거래로 국내에 유통되는 스크랩을 대규모로 사들인 뒤 수출까지 하는 중국계 대상들도 등장했다. 경기 평택의 C무역, 화성의 E무역, 부산의 G무역 및 H금속 등이 중국계로 지목받고 있는 업체들이다. 현금을 주고 사는 무자료 거래는 세금계산서를 끊을 필요가 없어 판매가의 10%에 이르는 부가가치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지난 19일 기준 구리 스크랩 가격은 ㎏당 1만800원 선이다. t 단위로 움직이는 거래량을 따지면 엄청난 세금이 새어나가는 것이다.
구리 제조·유통업계는 초기 단계 스크랩 수집 과정의 거래 관행을 반영해 일정 금액의 매입 원가를 인정하고 무자료 거래를 양성화하는 ‘원가인정제도’를 도입하거나, 수출 단계에서 검역을 강화해 구리 스크랩의 무분별한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무자료 거래 양성화의 키를 쥔 기획재정부는 세제 형평성을 들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부처 간 이견도 있어 구리업계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긴 어렵다”고 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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