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기사 산재 적용 주목
법적 공백에 산재 소송 지속
올해 10월 중 예방 대책 마련
"업무 스트레스 등에 초점 둬야"새벽 4시 15분 인천 서구 원당대로. 배송업무를 하던 기사 A씨가 운전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A씨는 이 사고로 왼쪽 다리 곳곳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업무상 재해를 당했다면서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지급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단은 A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도, 산재보호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택배원)도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했다.
20일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새벽배송 종사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방치된 상태다. A씨 사례처럼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새벽배송 종사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 장시간 근로, 야간근무, 폭염·한파 등 건강상 위험 요인에 노출돼 있다고 설명했다.
법적 공백 속에서 법원을 통해 직접 구제받으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새벽배송 기사의 산재 적용을 놓고 근로자성을 다툰 국내 1호 판결 '마켓컬리 사건'의 당사자인 A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A씨는 컬리 배송 자회사 '컬리넥스트마일'과 위탁계약을 맺고 새벽배송 업무를 수행했다. 법원은 컬리넥스트마일이 구체적인 업무 내용을 지시한 점을 근거로 A씨가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단이 A씨에게 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
공단은 항소했다. 오는 5월 항소심 첫 변론기일이 진행된다.
법적 공백이 이어지는 사이 산재는 계속됐고 분쟁도 지속됐다. 그러나 어느 기관도 새벽배송 종사자들의 근로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연구원은 새벽배송 종사자 산재 예방 대책 마련을 위한 사전 작업에 착수했다. 새벽배송 종사자들만을 대상으로 산재 예방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새벽배송 종사자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근기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사례가 있다"며 "현재 새벽배송 종사자 현황·건강장해와 관련된 연구가 없어 산재발생률이 높은지 판단하기 어려운데 연구를 거쳐 현황을 파악해 문제가 확인되면 그에 따른 보호대책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연구원이 과거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새벽배송을 포함한 전체 택배 종사자 재해 중 60% 이상은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재해다. 신속 배송이 강조되면서 신호 위반·과속뿐만 아니라 야간 배송이 증가한 탓이다.
여러 화물을 차량에 싣고 아파트나 주택으로 나르는 과정에서 근골격계질환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고객 응대 도중 발생하는 악성민원으로 직무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산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업무스트레스, 업무강도, 긴장도 등에 초점을 맞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준 법무법인 마중 대표변호사는 "(새벽배송 종사자는) 육체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압박을 많이 받는데 업무 긴장도와 속도감을 유지한 상태로 휴게시간을 늘리면 회사에 종속되는 시간만 늘리게 된다"며 "업무 집중도와 스트레스에 초점을 맞춘 실질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업계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당장은 연구원 자체 연구과제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결과물이 어떻게 활용될지에 따라 현장에 미칠 영향이 좌우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기업이 독자적으로 새벽배송 산재 대책을 내놓기 어려운 만큼 공공기관이 팔을 걷어붙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소 휴식시간 보장이나 휴게시간 확대, 운행시간 축소 등의 방안이 언급될 경우 배송현장 인력 운영 방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영계 관계자는 "만약 부족한 부분들이 있어서 실효적인 새벽배송 기사 산재 대책이 나온다면 산재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라며 "연구 결과가 나오면 향후에 어떤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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