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피플
'속도조절' LG·SK와 대조적
질적 성장 다지며 실탄 쌓아
올 6.5조 투입, 외형확장 시동
미국 공장 증설 가능성도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 가운데 설비 투자에 가장 소극적인 업체는 언제나 삼성SDI였다. 작년 설비 투자액은 4조3477억원으로 LG에너지솔루션(10조8906억원)의 39.9%에 불과했다. 2021년 출범 후 매년 적자를 낸 SK온(지난해 7조원 추산)보다 적었다.
‘투자를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사내외에서 끊이지 않았지만, 최윤호 삼성SDI 대표(사진)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수익성 중심의 ‘질적 성장’에 집중할 시기다. 때가 되면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것”이라며.
삼성SDI에 ‘그때’가 왔다. 작년 수준으로 투자 규모 조절에 나선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달리 삼성만 올해 투자액을 대폭 늘리며 확장에 나섰다. 19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올해 설비 투자액을 전년보다 50% 이상 많은 6조5000억원 이상으로 잡았다. 배터리 시장을 잡기 위해선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기)에 빠진 지금이 오히려 투자 적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SDI 말레이시아 사업장을 방문해 “담대한 투자”를 주문한 것도 공격 투자에 한몫했다.
업계에선 삼성SDI가 지름 46㎜짜리 원통형 배터리 생산 설비에 목돈을 투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원통형 배터리 시장의 주력 상품인 지름 21㎜ 배터리보다 용량은 다섯 배, 출력은 여섯 배 개선된 차세대 배터리다. 미국 테슬라가 작년 말 4680(지름 46㎜, 높이 80㎜) 배터리를 장착한 신차 ‘사이버트럭’을 출시하면서 이 규격 제품 수요가 늘고 있다. 오는 8월 양산에 들어가는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삼성SDI도 내년 초 양산 대열에 합류할 계획이다. 다만 삼성SDI는 지름은 46㎜로 같지만, 높이는 80~120㎜로 다양화한 제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가 미국 공장 증설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 대표가 지난 1월 말 전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신규 고객 확대’를 언급해서다. 신규 고객을 잡으려면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앞다퉈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는 미국 공장 생산 규모를 늘리는 게 유리하다. 삼성SDI의 미국 생산 규모는104GW로 LG에너지솔루션(284GW)과 SK온(164GW)에 크게 못 미친다.
업계에선 삼성SDI의 투자 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 2년 연속 2조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 대표는 삼성전자 CFO(최고재무책임자)를 지내는 등 숫자에 강하다”며 “상당한 투자 여력을 갖췄기 때문에 대규모 설비 투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취임 3년차를 맞은 최 대표는 그동안 투자의 방점을 설비 확장보다는 연구개발(R&D)에 맞췄다. 그 덕분에 삼성SDI의 R&D 투자액은 2022년 업계 최초로 1조원을 넘었고, 작년에도 1조1364억원을 썼다. 지난해 1조373억원을 투입한 업계 1위 LG에너지솔루션보다 많았다. 삼성SDI가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서 가장 앞서나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SDI는 지난해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구축한 데 이어 2027년 양산에 들어간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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