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 '인터배터리'.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포스코홀딩스, 에코프로 등 국내 유수의 배터리 관계사 부스 사이에 한 대형부스가 참가자들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참치회사로 잘 알려진 동원 그룹의 '동원 시스템즈' 입니다. '참치 만드는 회사가 갑자기 배터리를?' 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동원은 이미 배터리 분야의 '강자' 중 하나입니다. 동원시스템즈는 부스를 통해 배터리캔, 배터리에 들어가는 소재 중 하나인 알루미늄 양극박과 관련된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배터리 소재 만드는 식품회사
동원시스템즈가 배터리 분야로 진출한건 놀랍게도 참치캔을 만드는 기술과 양극재박, 배터리 캔 등을 만드는 기술이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참치캔의 내부를 살펴보시면 회색의 알루미늄으로 구성돼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알루미늄을 '얼마나 균일하게 잘 펴서 동그랗게 만드는 가'가 핵심입니다. 2차전지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양극박은 양극재 부분에서 전자를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는 금속 호일을 뜻합니다. 여기에도 알루미늄을 얇고 균일하게 가공하는 기술이 적용됩니다. 알루미늄을 얇게 피기위해서는 초고압 압연기로 누르는 과정이 필요한데 참치캔을 만드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동원시스템즈는 찾아온 기회를 살려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참치캔 등을 만드는 공장에서 2차전지용 소재도 함께 생산해왔는데, 이제는 아예 2차전지용 공장을 새로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제품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에 납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배터리 산업에 진출한 식품회사는 동원 뿐이 아닙니다. 롯데그룹도 2차전지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음료캔이나 과자 포장용지를 만들던 롯데알미늄 2차전지 산업에 진출한 대표적인 식품회사입니다. 알루미늄 음료캔을 만들던 노하우를 살려 양극박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삼아알미늄, 한국알미늄, DI동일 등 알루미늄 호일을 만들던 회사들도 2차전지 양극박 제조업체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2차전지 소재 분야가 정체된 알루미늄 사업을 일으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통기업들의 '신사업' 목표된 2차전지 사업
동원이나 롯데처럼 많은 기업들이 기존 사업에서 가지고 있는 기술을 활용해 2차전지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시대'를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은 아니지만 하필 가지고 있는 기술이 2차전지 제조 기술에 꼭 필요한 기술이었으니까요. 참치캔을 만들던 기술이 우연히도 2차전지 소재 제조 기술에도 필요했던 것처럼요.
배터리가 상대적으로 다양한 소재와 부품 및 기술을 필요로 하는 특성이 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식품 관련 업체가 반도체나 자동차 분야로 뛰어든다는 얘기는 못들어 보셨을 겁니다.
고려아연 역시 배터리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있는 대표적인 회사입니다. 고려아연은 사용 기간이 다 된 배터리에서 핵심 금속 등을 추출해 내 다시 활용하는 폐배터리 리싸이클 사업을 회사의 새로운 먹거리로 낙점했습니다.
고려아연은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 처럼 아연 등 비철금속을 제련하던 회사입니다. 제련 기술의 핵심은 원자재에서 얼마나 금속을 순도높게 뽑아내느냐인데, 폐배터리 리싸이클 기술 역시 다쓴 배터리에서 금속을 얼마나 순도 높게 뽑아내느냐를 요구합니다.
고려아연은 배터리 소재업체인 LG화학과 손잡고 글로벌 폐배터리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페배터리 리싸이클 시장의 성장성이 워낙 높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고려아연이 안정적인 전통 산업기업에서 성장기업으로 체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라는 분석까지 나옵니다.
LS그룹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기, 전력 관련 기기나 소재를 만들던 LS그룹은 기술적 유사성을 토대로 2차전지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동 제련 회사였던 LS MnM은 지난해 말 2차전지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고 선언하면서 회사를 LS그룹의 핵심 '캐시카우'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특수철강을 만들던 동국산업, TCC 스틸 등은 원통형 배터리에 니켈도금강판이 들어가게 되면서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중견·중소 기업 레벨로 시야를 넓히면 2차전지 시장을 신사업으로 발표하는 기업은 셀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너도나도 기존 기술을 활용해 2차전지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주가가 급등하는 탓에 금융감독원은 이들 기업이 실제 배터리 사업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을 정도입니다. 지난해 2021~2023년 사이 2차전지 사업을 기업 정관에 신사업으로 추가한 기업만 125곳에 달합니다. 통신설비 제조기업, 조리기구 제조기업 등 분야도 다양했습니다.
2차전지 분야가 더이상 배터리 셀, 양극재 분야 몇몇 주요 기업들의 명운만을 결정하는 사업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배터리 분야에 뛰어들고 있는 만큼 국내 2차전지 산업 성패에 따라 이들 기업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게 됐습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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