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경제 뉴스
대학 안 가도 대기업 취업 된다더니…
202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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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5년간 취업률 '반토막'
신입생 충원율도 '역대 최저'

무너지는 청년 채용 생태계



[ 최만수 기자 ]
대학을 가지 않아도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이 10년도 안 돼 흐지부지됐다. 이명박 정부가 고졸 취업의 핵심 통로로 적극 지원한 직업계고의 취업률은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며 반토막 난 것으로 나타났다. 신입생 충원율은 역대 최저치다. 고졸 채용 활성화를 위한 새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서울교육청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 직업계고(특성화고 마이스터고)는 올해 72곳 중 72.2%인 52곳이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전체 모집정원 1만2670명 중 1만161명만 뽑아 신입생 충원율은 80.2%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학년도엔 96.7%였는데 지난 5년간 16.5%포인트 하락해 올해 최저가 됐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직업계고를 외면하는 까닭은 학교 설립 목적인 취업이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직업계고 졸업자 7만8994명 중 취업자는 2만2583명으로 전체의 28.6%에 불과했다. 취업률은 2017년 50.6%를 찍은 뒤 매년 하락하는 추세다. 졸업 후 취업 대신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학생은 늘고 있다. 직업계고의 진학자 비율은 2017년 32.5%에서 지난해 45.0%로 높아졌다.

정부가 방치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는 “모두가 대학에 가는 구조를 바꿔 사회 진출 연령을 획기적으로 낮추겠다”며 마이스터고를 도입하는 등 고졸 취업과 직업교육에 전폭적인 지원을 쏟아부었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관련 정책은 힘을 잃었다.

이명박 정부가 기업 및 지방자치단체 등과 맺은 고졸 채용 협약은 19건이었는데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체결한 협약을 합쳐도 9건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실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직업계고 졸업생의 취업은 더 어려워졌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직업계고 문제는 학교와 교육당국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새 정부가 추진하는 인공지능, 반도체 등 첨단 산업 육성과 발맞춰 관련 고졸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고졸 일자리 손놨던 文정부…공공기관 절반이 '채용 0명'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기업의 채용 증가로 우수한 학생들도 소신 있게 특성화고에 진학하고 있다.”

서울교육청은 2012년 11월 특성화고 신입생 모집 원서를 마감한 뒤 이같이 발표했다. 그해 서울 특성화고 71곳에는 정원(1만6730명)보다 더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일부 특성화고에는 전교 1등 학생이 지원하거나 합격자 평균 내신 성적이 상위 15% 안팎에 달하기도 했다.

10년 만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정부 지원도, 기업 채용도 줄면서 특성화고를 비롯한 직업계고 상당수가 정원조차 채우지 못해 시름에 빠져 있다. 이대로라면 대규모 통폐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권 바뀌며 뒤로 밀린 ‘고졸 취업’
직업계고의 몰락은 문재인 정부에서 두드러진 양상을 나타냈다. 올해는 서울지역 72개 직업계고 중 72.2%인 52개교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교육현장에선 문재인 정부가 고졸 취업과 직업계고 육성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고졸 채용을 확대하던 공공기관들은 태도를 싹 바꿨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공공기관 370곳 중 49.8%인 184곳은 지난 5년간 고졸 채용 실적이 전혀 없었다.

시·도 교육감들은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폐지와 혁신학교 확대 경쟁에만 골몰했다. 직업계고 학생의 안전사고를 줄이겠다며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자 기업들은 고졸 인재를 더 외면하게 됐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이명박 정부 때는 대통령이 직접 고졸 취업 활성화 정책을 챙겼지만 이후엔 과거 정부 정책이란 굴레가 씌워져 외면받은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직업계고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 통폐합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12년 전통의 덕수상고(현 덕수고 특성화계열)는 2024년 경기상고로 통합된다. 성수공고도 같은 해 인근 휘경공고로 통합되면서 서울 지역 공고로는 첫 폐교 기록을 세우게 됐다.
○‘선취업, 후진학’ 구조 무너져
선취업, 후진학 선순환 구조도 무너지고 있다. 취업난과 입사 후 처우에 대한 불만 등으로 대학 진학으로 궤도를 수정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 졸업생 김모씨는 “학교 다닐 때 전산회계 자격증을 따서 취직했지만 회사에선 영수증 정리 같은 일만 시켰다”며 “취업하고도 몇 달 다니지 못하고 퇴사한 뒤 대학에 입학하는 친구가 주변에 많다”고 전했다.

학령인구 감소도 위기 요인으로 꼽힌다. 2011년 서울 중학교 3학년 학생은 11만3675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6만7623명으로 10년간 41% 급감했다. 그만큼 대학 진학이 쉬워지자 직업계고가 외면받는 것이다. 김새봄 교육부 직업교육정책과장은 “일반고도 학령인구 감소로 타격을 받고 있지만 직업계고는 그 피해가 더 심하다”고 말했다.

직업계고의 취업 부진은 전체 고졸 고용률을 떨어뜨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고졸 청년의 고용률(63.5%)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32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졸업 후 첫 직장을 갖는 입직 소요 기간은 평균 35개월로 대졸자(11개월)의 세 배 수준이었다.
○“정부가 직업교육 마스터플랜 짜야”
직업계고와 교육청은 해법을 찾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재철 강원교육청 장학사는 “최근 로봇·항공, 반려동물, 커피·베이커리 관련 학과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강원지역 직업계고에 이들 학과를 신설하는 등 학사 개편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선 학교와 교육청의 노력만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명박 정부 때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교육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련 정부 부처를 독려해 미래 산업 변화를 반영한 비전을 제시하고 직업계고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직업계고 졸업생 채용 기업에 1명당 최소 1500만원의 세제 혜택을 부여한 것처럼 파격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국 공업계고 회장을 맡고 있는 신승인 경기기계공고 교장은 “고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부정적 인식은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며 “선진국처럼 국가가 책임지고 중등단계 직업교육의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만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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